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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에 관한 의학적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B.C. 1850년 이집트의 Amenemhat 3세의 통치시절, Petri Papyrus에서 발견된 것으로 몇가지를 소개하면, 악어의 똥과 아교같은 물질을 배합하여 쓰기도 하며 질을 자극하는 모종의 물질과 함께 벌꿀, 탄산나트륨을 배합하기도 하며 기름지고 껌같은 물질을 배합하기도 하여 이를 성교 전에 질 내에 삽입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방법들이 과학적으로 타당성 있는 방법들은 아니었으나 당시에도 임신을 피해보려는 노력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악어의 똥은 약알칼리성으로 정충의 운동성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배합된 아교성 물질이나 기름진 물질이 기계적 차단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으며 끈끈한 벌꿀같은 경우는 정충의 운동성을 현저히 저하시킬 수 있다. 로마제국의 전성기 때에도 석류껍질을 갈아 포도주와 생강, 익지 않은 오배자와 혼합하여 작은 공처럼 빚은 후 말려두었다가 성교 전에 질 내 삽입하여 피임하는 방법을 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고대의 책을 보면 주술적인 방법으로 피임을 유도하려고 하였던 기록이 있다. 예를 들면, 겨자씨를 갈아 참기름에 녹여 월경 중인 3일 동안 복용한다든가 삽입 직후에 뒤로 일곱이나 아홉 걸음을 팔짝 뛰면 임신을 피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이다. 그 외 유산을 유도하는 방법으로 아랫배를 마사지하거나, 여러 가지 식물성 제재를 만들어 먹이거나 질내에 삽입시켰던 기록이 있다.
한편으로는 인류는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늘 인구를 조절할 필요를 느껴 왔다. 때에 따라서는 ‘전략적 피임’이 요구되는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피임의 역사’(책세상)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40세가 넘은 여자가 임신하면 국가가 정책적으로 낙태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으며 피임 연구의 선구자인 카-손더즈는 1922년 “심지어 선사시대에도 인구를 조절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면서 원시 종족들 사이에서도 성교 절제 기간의 연장, 낙태, 유아 살해 등이 ‘피임법’으로 쓰였다고 주장했다.
근대적인 피임법들은 19세기 영국에서 만들어 졌으며 질외사정, 금욕, 질내 삽입제재들 및 인공유산 등의 개념들이 통용되고 있었다. 1879년 영국인 약사인 렌덜에 의해 질좌약식 피임제가 최초로 만들어졌는데 영국에서는 약간 수정하여 렌델씨 좌약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아직도 팔리고 있다고 한다.
콘돔의 역사는 언급한 바와 같이 1840년대에 고무의 발명으로 보편화 되었으며 1500년대에 일본에서 린넨으로 만든 페니스주머니에 대한 기록이 있고, 페서리는 독일의 의학자 하세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1920년대에 유럽과 미국에서 널리 통용되었다.
1960년대에 피임법의 혁명이라고 볼 수 있는 피임약과 자궁내장치(loop), 수술적 단산법 들이 이용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1960년대 경구피임약의 발명은 옛 사람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혁명’과 같은 사건이었다. 알약을 먹는 간편한 방식으로 여자들은 어머니가 될 것인지 말 것인지, 즉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전까지 애용된 피임법은 콘돔 착용 등 주로 남자가 행동에 옮겨야 하는 것이 었으나 이제 여성이 피임을 주도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에 따라 남녀관계에도 변화가 왔다. 이제 충분히 조심한다면 섹스에 대해서는 누군가 책임을 지고 또다른 누군가는 보살핌을 받는 일은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첨단 군사 기술이 여자에게도 남자와 동등한 전투력을 부여한 것과 마찬가지로 의학 발달이 성개방뿐만 아니라 성평등을 가능케 만든 것이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피임법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핵가족이라는 가족 형태도 나타나지 않았으리라 보고있다.